전남 여수시 돌산읍 둔전리 1080-2,8, 폐교와 고인돌 그리고 무연고 / 93×140cm 피그먼트 프린트 / 2015년 8월 23일 오후 1시 3분
전남 고흥군 금산면 석정리 258-4 / 93×140cm 피그먼트 프린트 / 2015년 9월7일 오전 10시 20분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 53 / 93×140cm 피그먼트 프린트 / 2015년 11월15일 오전11시 27분
안성시 동도읍 만정리 산80-8, 이씨 외 3인의 양파밭 / 93×140cm 피그먼트 프린트 / 2017년 5월14일 오후 12시
경북 영주시 대촌리 산 4-8 / 93×140cm 피그먼트 프린트 / 2015년 10월 24일 오후 1시 7분
나주시 대기동 산 175-1 나주 무연고 묘지 / 112*162cm 피그먼트 프린트 / 2015년 9월7일 오후 3시 13분 / 2015년 9월7일 오후 3시 59분 1991년부터 나주시 대기동 마을 주민들은 인근에 주인 없이 흩어져 있는 묘지를 조사해 한 기씩 모아 마을 입구에 무연고 묘지 239기를 조성하였다. 그리고 매년 추석마다 벌초봉사를 하고 있으며, 1994년 이창동새마을협의회에서 비용을 마련해 작은 대리석으로 ‘무연고 묘소’ 비석을 새겨 관리해오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 단원동 선감동 산 37-1 선감학원사건 무연고 무덤 / 112*162cm 피그먼트 프린트 / 2017년 4월2일 오후 1시 39분 / 1시 35분 선감학원은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선감동의 섬인 선감도에 위치했던 소년 수용소이다. 1942년 일제가 부랑아 수용을 목적으로 만든 뒤 광복 이후에도 1946~1982년 36년 동안 수도권에서 불량행위를 하거나 그런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8~18살의 청소년을 집단 수용해 인권을 짓밟은 곳이다. 부랑아로 지목된 아이들은 대다수가 알려진 것과 달리 집과 부모가 있는 빈민 아동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길거리에서 이유도 없이 잡혀온 아이들은 강제노동, 잔인한 폭력, 성폭행을 겪으며 감금되어 수용되었다. 40여 년 많은 아이들은 폭력과 영양실조 그리고 탈출을 시도하다 죽었고 이 시신들을 이곳에 버렸다. 이 같은 사실은 몇 년 전 언론에 보도되면서 알려지게 되었고 경기도청은 오랜 세월동안 방치되었던 사실과 시신들을 수습하면서 생존자들과 무고하게 죽은 아이들이 묻힌 무덤들을 돌보려 하고 있는 중이다.
대구 달성군 옥포면 기세리 산144-5 대구 교도소 사형수 무연고 묘지 / 112*162cm 피그먼트 프린트 / 2015년 10월25일 오후 3시 11분 / 3시 59분 대구 교도소 사형수 묘지는 1971년 대구 교도소가 대구시 중구 삼덕동에서 달성군 화원읍으로 이전하면서 조성됐다. 당시 대구 교도소는 사형집행이 많이 이뤄져 전국에서 손꼽히는 곳이었다. 유신시대(제4공화국)나 후일 전두환 시대에 반정부 정치범들에게 가장 가혹한 처우를 하기로 악명이 높은 곳이기도 했다. 1970년대 초반 간첩단사건 등으로 수감된 사형수 등도 상당수 묻혀 있다는 것이 인권단체들의 주장이다. 이 무렵 전국적으로 간첩죄 명목의 사형이 빈번했으며 대구 교도소도 예외가 아니었다. 하지만 반공 이념이 철저한 사회분위기 속에서 유가족들도 사형수 시신 수령을 꺼리거나 연고자가 없는 경우가 많아 사형 집행 후 시신을 찾아가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대구 교도소에는 찾아가지 않은 시신들이 늘어났으며, 사형된 시신들을 따로 안치하기 위해 비슬산 기슭에 묘지를 조성하게 됐다. 이 묘지에는 작은 봉분 70여 기와 42명을 합장한 큰 봉분이 있다. 그리고 1996년 11월15일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새로운 봉분은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